돈값하는 영화 후기

미친 광대 살인마가 펼치는 엽기 행각! 슬래셔/고어 영화 '테리파이어 2 (Terrifier 2, 2022) 후기 + 시네마테크KOFA 방문!

쿠엔틴핀처 2024. 4. 27. 13:36

 

■ 작년까지만 해도 한국영상자료원 / 시네마테크 KOFA에서 무료로 상영해 주는 영화들은 주로 아트하우스 영화겠거니 하고 가 볼 생각을 안 했다.

■ 우연히 한국영상자료원 인스타 피드를 보다가 매번 정해지는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다채로웠고 처음 방문한 계기는 'LA 네오 느와르' 특집으로 존 부어만 감독의 액션 범죄 영화 '포인트 블랭크 (Point Blank, 1967)'였다. 재밌다는 얘기만 들었고 기회가 없어서 못 봤던 영화를 여기서 대형 스크린으로 접할 줄 몰랐다!

■ 그 후부터 어떤 프로그램이 새로 올라오는지 매주 체크하는데 다른 때에 비해서 정확한 테마가 없어 보이는 '2023년 사사로운 영화' 리스트에서 내 눈을 의심하게 되는 영화를 발견했다. 바로 슬래셔 영화 '테리파이어 2'였다.

■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놓친 영화를 이렇게 극장에서 보게 되다니 정말 흔치 않은 기회라 예매가 풀리길 며칠 기다리다 드디어 예매 성공!

 

CG를 자제하고 특수효과 위주로 온갖 잔인한 장면을 연출했다고 해서 과연 어느 정도길래 하는 호기심도 있고 호러/슬래셔 장르를 거의 30살 이후에 처음 입문했기에 주변 호러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뒤늦게 예전 명작들을 찾아보는 편이다.

■ '테리파이어' 1편은 못 봤는데 주변에서 굳이 볼 필요가 없다고 함. 너무 저예산이라 조악하다고 하면서 2편은 장르 팬에게는 수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imdb나 로튼토마토를 체크해 봤는데 평도 호러 영화 레벨에서 상당히 괜찮은 편이었다.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 부히스' 또는 '나이트메어'의 '프레디 크루거'같은 호러 아이콘 가능성을 새롭게 보여준 캐릭터가 '아트 더 클라운'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테리파이어 2'의 극중 빌런인 미치광이 광대가 과연 어떻게 정신 나간 짓을 하면서 나올지 굉장히 기대를 가지며 극장을 갔다.

 

 

감독: 데미안 레온

출연: 로런 라베라(시에나), 데이빗 하워드 손튼(아트 더 크라운), 제나 카넬(타라 헤이즈), 펠리사 로즈(미즈 프린시프), 캐서린 코코란(돈)

공식 시놉시스: 악명 높은 마일즈 카운티 대학살 이후 1년, 연쇄 살인마 ‘아트 더 크라운’이 한 유가족을 해치기 위해 다시 돌아온다. 악령의 환영에 이끌린 채, 살인마는 한 십 대 소녀와 그녀의 남동생을 노린다. 악몽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록 살인은 증가한다. 남매는 그들을 구원으로 이끌 한 가족의 비밀을 발견하고 ‘아트 더 크라운’의 학살을 멈추려 한다.

 

평소에도 가장 선호하는 좌석은 A열~C열이다. 다들 목 아프다고 하는 위치인데 언젠가 우연찮게 앞줄에 앉았다가 너무 편하게 봐서 그 뒤로는 웬만하면 앞에서 보게 된다. 시야가 꽉 차서 통로나 좌석 불빛 등이 전혀 안 보여서 좋다. 아이맥스 저리가라임.

시네마테크KOFA 영화 관람은 '무료'이다. 대신에 노쇼 할 경우 페널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음.

■ 이날은 차를 가져가지 않았는데 주차장이 항상 거의 풀로 꽉 차있다.

 

정말 잔혹함의 수위는 높구나!

러닝타임이 호러 영화치고 꽤 길다. 거의 2시간 20분 정도 되더라.

■ 나름 서사를 넣고 싶었던 것인지 주인공 가족들의 대화가 꽤 많다. 여주인공 캐릭터 빌드업을 위함인지... 솔직히 필요 이상으로 엄마/자식 간의 대화가 너무 전형적이고 길었다.

■ 살인마 광대 캐릭터가 특이하긴 하다. 그냥 순식간에 살인을 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방을 고문하듯 거의 '쏘우', '호스텔'급으로 서서히 괴롭힌다. 그러면서 광대이다 보니 표정은 마냥 즐거운... 정말 후 드려패고 싶은 캐릭터라 참신함이 느껴졌다.

■ 1편은 안 봤기에 '아트 더 클라운'의 탄생 기원은 알지 못하지만 인간을 초월한 존재임은 확실해 보인다. 인간 힘으로 어찌해볼 노력이 없는 미친 살인마가 펼치는 살육의 대향연

■ 죽이는 과정도 창의적으로 그로테스크하다. CG가 아닌 특수효과를 통해 재연해낸 비주얼은 굉장히 퀄리티가 높아서 제작 과정 영상이 있으면 한번 찾아보려고 한다. 엄청난 공을 들인 티가 난다.

■ 잔인한 장면에 대한 묘사는 자세히 하지 않겠다. 짧게 요약하자면 '찌르고 자르고 쑤시고 터지고 뭉개고'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식이다.

 

많은 떡밥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끝이 난다. 의도적인지 나 몰라라식으로 끝낸 건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더욱 미스터리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지만 3편이 제작된다고 하니 3편에서는 아트 더 클라운의 정체나 그와 함께 다니는 소녀의 정체, 여주인공 시에나의 아버지가 그린 그림, 시에나의 아버지와 아트 더 클라운의 관계 등에 대해 좀 더 배경 설명이 나오면 어떨지...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은 '파이널 걸'의 설정이다. 생전 아버지가 그린 그림에서 착안해서 할로윈 때 입을 의상을 '시에나'가 직접 만드는데 날개가 달린 '아마존' 여전사 같은 모습으로 할로윈 파티를 가게 되고 위기를 겪게 된다.

■ 디테일하게 설정을 잡은 것 같진 않지만 아주 의도적으로 '파이널 걸'이 될 '시에나'에게 '영웅의 여정'을 만들어주기 위해 선택한 의상이라고 생각이 든다.

조지프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The Hero with a Thousand Faces, 1949')에서 처음 언급된 영웅의 여정의 신화적 구조 이론을 슬쩍 심플하게 가져온 것 같다. (나도 이 책을 읽지는 못했고 대충 내용만 안다.)

■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 캐릭터는 아주 평범한 삶 (시에나의 평범한 일상)을 살다가 모험의 시작 (할로윈 파티 참석 후 환영을 보고 동생이 위기에 처했다는 연락을 받음)과 함께 이어지는 시련 (아트 더 클라운의 등장), 동맹 (동생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 악당과 맞대면 (각성한 '시에나' vs 아트 더 클라운) 식의 과정을 거치면서 진정한 '파이널 걸'로 변신하게 된다.

■ 물론 위에 언급한 떡밥에 속하는 건데 갑작스럽게 판타지스러운 설정이 추가되면서 '시에나'가 '파이널 걸'로 탈바꿈하는 과정이 역시 부연 설명은 없다. 두 시간짜리 복수극 영화에서 피해자였던 여성이 복수의 화신이 되는 과정도 극히 일부 영화를 제외하고는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되지만 갑작스레 주인공이 강단 있게 바뀌는 경우가 꽤 있다. (본인이 신체적으로 트레이닝을 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경우도 가끔 있음.) 그냥 그렇게 이해하고 보면 된다. 깊게 생각하지 말자.

 

주인공 '시에나' 역할을 맡은 로렌 라베라가 정말 돋보였다. 프로필을 보니 배우이면서 스턴트 연기자 및 무술가 출신이다. 주로 B급 호러 영화에 많이 나오면서 '스크림 퀸' 타이틀도 받았었다. 로렌 라베라가 나온 영화를 처음 봐서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스크림 퀸' 타이틀이 붙는 배우들 (제나 오르테카, 안야 테일러 조이, 미아 고스 등등)의 영화는 거의 다 찾아보는 편인데 또 찾아볼 일이 생겨서 기쁘다.

■로렌 라베라의 첫 번째 영화계 입문은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23 아이덴티티'에서 안야 테일러 조이의 스턴트 대역을 맡으면서부터 였다고 한다.

■ 이런 경력을 보니 도리어 '테리파이어 2'에서 본인의 액션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3편에서도 '시에나'는 계속 나온다고 하고 또, 2편 마지막을 보고 나면 '할로윈'의 로리 스트로드처럼 점점 정신력과 전투력이 강해지는 캐릭터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테리파이어 3'에서 더 제대로 된 액션 한번 기대해 봐도 될 것 같다.

■ 지극히 장르 영화 팬들만을 위한 호불호가 확실한 호러 / 슬래셔 / 고어 영화이다. 이런 유의 영화에 관심 없는 사람이 입문용으로 이 영화를 보는 건 솔직히 모르겠다.

■ 개인적으로 카테고리를 넓게 잡고 호러 범주에 드는 영화에서 나에게 입문용이 되어준 영화들은 '새벽의 저주 2004년판', '이치 더 킬러', '주온', '검은 물밑에서', '디센트', '알.이.씨' 정도였다.

■ 하여튼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를 제외하고는 B급 장르 영화를 극장에서 보기가 힘든 편인데 그것도 '한국영상자료원 / 시네마테크KOFA'에서 이렇게 난도질하는 영화를 대형 스크린으로 봤다는 것에 아주 만족도가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