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값하는 영화 후기

코미디/호러 영화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 Humanist Vampire Seeking Consenting Suicidal Person, 2023) 후기

쿠엔틴핀처 2024. 5. 30. 22:30

 

■ 감독: 아리안 루이 세즈

■출연: 사라 몽프티, 펠릭스-앙투안 버나드

■ 캐나다 영화, 언어: 프랑스어

■ 2024년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베니스 데이즈 감독상 수상

 

■ 개봉일: 2024년 5월 29일

■ 시놉시스: 사샤는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는 뱀파이어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적응을 전혀 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감수성이 너무 풍부해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뱀파이어로써는 아주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스스로 사람을 사냥하는 일은 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 필요한 피의 확보를 부모에게 계속 의지하려고 하는 사샤. 사샤의 부모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혈기 왕성한 사촌 '드니즈'로부터 배우면서 뱀파이어로써 각성하기를 기대하며 집을 떠나 '드니즈'와 함께 살게 한다. 혈액 공급이 끊긴 사샤는 드니즈로부터 스스로 먹이를 사냥하도록 강요를 받지만 아무래도 인간을 전혀 죽일 수 없었다. 마음의 한계를 느꼈을 때 자살 욕망을 가진 외로운 청년 폴을 만난다. 어디에도 있을 곳이 없다고 느끼고 있는 그는 사샤에게 자신의 목숨을 바치려고 제안하지만...

■ 뱀파이어물은 사랑에 포커스를 맞추기도 하고 철저하게 인간을 사냥하면서 쫓고 쫓기는 내용을 담기도 하고 뱀파이어와 인간과의 대립에 포커스를 맞추기도 하며 다양한 변주를 통해 장르를 발전시켜왔다.

 

■ 하지만, 뱀파이어의 가장 기본적인 '피를 빨기 위해 인간을 희생시키는' 본능 자체를 거부하는 설정을 전제로 한 독특한 뱀파이어물이 나왔다. (사람을 죽이기 싫어하는 뱀파이어 설정이 최초일 리는 없을 것 같다. 내가 못 봤을 뿐 당연히 예전에도 있을 것으로 추측...)

■ 이 영화의 두 주인공은 인간을 해치려는 마음이 없는 여린 뱀파이어 소녀 '사샤'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며 삶에 대한 의욕이 전혀 없는 소년 '폴'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종의 로맨스/뱀파이어/성장물이다.

■ 뱀파이어 장르를 빌려왔지만 어떠한 이유로 피를 마시기를 거부하는 뱀파이어 대신 정신적인 이유로 음식 섭취를 못하는 일반 청소년의 섭식장애로 놓고 봐도 이야기는 원활하게 받아들여진다.

■ '휴머니스트 뱀파이어'라는 점은 자세히 생각해 보면 딱 들어맞는 건 아니다. 본인이 직접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기 싫을 뿐 부모가 가져다준 혈액을 음료수처럼 빨대로 쪽쪽 빨아먹는 건 살기 위해서 배가 고파서 매일 하는 행위이다. 결국 '내 손에 피 묻히기 싫다'로 밖에 성립이 안된다. 어쩌면 아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기 뱀파이어의 머릿속에서 논리적이고 철학적으로 정의 내린 것이 '나는 사람을 해치면서까지 피를 마시고 싶지 않다'라는 전제가 본인은 '휴머니스트 뱀파이어'라고 나름 자신만의 논리로 정해버린 것이라고 생각은 든다. 직접 사람을 죽이진 않지만 결국 사람의 피를 간접적으로 섭취하면서 자기 편할 대로 정해버린 나름의 개똥철학쯤으로 봐도 될듯싶다. 즉, 영화 제목이 주인공이 자신을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 어쨌든 미스터리 스릴러이거나 심각한 내용이라기보다는 두 청소년의 방황과 성장통을 겪는 게 주된 내용이기 때문에 그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고 보면 그렇게 많이 거슬릴 부분은 없다고 봐도 될듯싶다.

 

■ 충분히 뱀파이어물답게 잔혹한 고어 장면을 넣을 수 있는 장면이 몇 번 있으나 직접적인 묘사는 되도록 피한다. 아마도 자극적인 비주얼을 담다 보면 성장물로서의 영화 톤이 옅어질 것을 우려해서 한 선택 같다. 개인적으로는 아쉽지만 이해가 되는 측면이다. (아트하우스 관에서 개봉한 이유이기도...?)

■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는 두 소년소녀가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며 서로에게 의지하며 상대방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매우 귀엽고 웃기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다.

■ 두 청소년 모두 부모가 부모 노릇을 못하는 문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도 아니고 부모들은 자식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기 때문에 가족 간의 갈등이 아닌 사샤와 폴 개인의 문제이고 이를 풀어가야 하는 것도 개인에게 남은 몫이다.

■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두 청소년의 이야기는 영화가 끝나도 계속될 것 만 같다. 앞으로 그들이 나아갈 미래를 관객으로 하여금 궁금증도 유발하고 응원을 하게 되는 만족스러운 결말이기도 하다.